제17·19·21대 국회의원 우상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상호 의원 프로필
1962년 12월 12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우상호 의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하여 줄곧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본래 우상호 의원의 집안은 부유했습니다. 아버지는 1916년 강원 철원 지역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일본의 동경 제국대학 체육학과에 유학을 다녀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45년에 철원이 북한 치하로 들어가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당에 땅을 헌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6.25 전쟁으로 국군이 철원의 일부 지역을 수복한 후에 일부 땅을 돌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상호 의원의 아버지는 되찾은 땅을 팔아 학교 건물을 지어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강원도 교육위원회 위원이 되었지만 월급이 없는 명예직이었던 탓에 땅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3남1녀의 막내 우상호 의원이 태어났을 때에는 집 한 채만 남아있었습니다. 때문에 어머니가 보건소 등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형제들이 모두 상위권의 성적을 가졌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우 의원은 중학교 시절 납부금을 독촉하는 종례 시간마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우 의원은 "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을 보낼테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어머니의 바람 덕분에 친척들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시인을 꿈꿨던 문학도가 민주화 운동을 하기까지
우상호 의원은 시인을 꿈꿨습니다. 때문에 집안의 기대와 달리 연세대 상대가 아닌 국어국문과에 진학했는데요. 1986년 오월 문학상 시 부문 당선, 윤동주 문학상을 받으며 예비 시인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상호 의원은 군대에서 학생운동을 다짐하게 됩니다. 군대에 있을 때 1985년 2월 12일 선거 때, 당시 어용 야당이라는 민한당이나 국민당과 달리 김영상과 김대중이 주도해 만든 신한민주당이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일주일 전부터 중대장이 '야당 찍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정신 교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표소가 중대장이었는데 투표를 처음하는 병사가 많아 지도 명목으로 중대장이 배석하고 있었습니다. 중대장 테이블에 투표용지를 놓고 인주를 찍는 방식이었는데, 야당을 찍은 우 의원에게 "그렇게 교육을 시켰는데 야당을 찍느냐"며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우 의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연대장이 불려가 술먹고 돈먹고 조직 선거를 하는 현실을 보고 구조적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학생운동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복학 후 84학번 세미나팀에 들어간 우상호 의원은 '국문과 84 강타'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3년 후배들과 함께 조를 짜서 학생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0.28 건국대학교 항쟁이 터진 이후 학생회장으로 권유를 받게 됩니다. 이후 학생운동 지도부에 당선되면서 폭력운동 중심의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화염병과 투석전 중심의 학생운동을 다수가 참여하는 온건한 운동으로 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실제로 비폭력 평화 운동 방식으로 전환되자 급격하게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4월, 전두환 정권이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하자, 야당, 시민사회, 학생운동 세력은 더욱 강경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폭로가 터지면서 정국이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개헌을 주장하던 야당, 시민사회, 학생운동 진영은 민정당 대통령 후보 선출대회에 맞춰 대규모 집회를 계획했습니다. 서울의 학생운동 진영은 집회 전날인 87년 6월 9일에 예비집회를 열었는데, 이전보다 다수가 참여한 집회 규모에 당황한 경찰들이 최루탄을 직사로 쏘기 시작하고 여기서 우상호 의원의 대학 후배인 이한열 열사가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 때에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49재 때 이한열 열사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들을 처벌하지 않아서 항의방문을 했다가 덕수궁에서 연행되었습니다. 당시 집회와 시위는 87년 6월 항쟁으로 처벌하기 어려우니,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죄로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정치 경력
우상호 의원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총재에게 직접 평화민주당 영입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출판사업을 하면서 청년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16대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젊은 피'로 영입되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대문구갑에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8번의 대변인
우상호 의원은 이례적으로 대변인을 여덟 번이나 했습니다. 대변인은 언론 노출도가 올라가는 장점이 있지만, 높은 업무강도로 인해 여러 번 하는 경우가 드물며, 거기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러 번 맡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덕분에 당을 위해 희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랜 대변인 생활로 주옥같은 말을 여럿 남겼습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에서 정상적으로 집무를 봤다는 소명자료를 낸 것에 대해 우 의원은 "이 정권은 재택근무 정권이라고 규정하겠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카피가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 침대는 집무실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물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선에 성공하였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원내대표 선거 결과 결선 투표로 가는 접전 끝에 우원식 의원을 이기고 원내대표가 되었습니다.
우상호 원내지도부는 2016년 20대 국회 개원 후 8월 중순부터 비공개로 최순실 태스크포스를 꾸렸습니다. 7월쯤부터 관련 제보들이 들어왔고, TF 멤버는 조응천, 손혜원, 도종환 의원 등이 있었습니다. 의원들 각자가 받은 제보들을 모아 보니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제보를 받고 터트릴 수 있는 의원 6명으로 TF를 구성한 것입니다.
비공개 TF의 활약 덕분에 매일 주요 언론 1면에 최순실 보도가 실리게 되었고, 박근혜 정부는 친박 핵심 이정현과 범 친박으로 분류된 정진석으로 구성된 새누리당 지도부에 국감을 파행시키기 위한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추미애와 우상호 투톱으로 이뤄진 민주당 지도부가 단독 국감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렇게 최순실 국정농단이 이슈화 되고, JTBC가 태블릿PC를 결정적 증거물로 확보하면서 촛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 의원은 "그때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힐거라 예상은 했으나 탄핵까지 갈 줄은 몰랐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2022년 6월 7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제20대 대선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었지만, 당내 원로들과 중진급 인사들이 위원장직을 거부하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우 의원에게 자리가 돌아간 것입니다. 의원총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를 받아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처음에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관련으로 분당 얘기가 나올 만큼 시끄러웠던지라 평이 좋지 못했으나, 이후 윤석열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당 지지율 급락으로 반사효과와 더불어 당내 혼란을 안정감 있게 추스른 '우상호 리더십'의 효과로 지지율 1위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8월 26일, 비대위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기자간다모히를 열고 80일간 비대위 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혔는데 특히 임기 막판 논란이 된 당헌 80조 개정 논란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비대위가 특정인 사당화를 돕기 위해 이런 논의를 한 것처럼 규정하는 건 억울하다. 제가 그렇게 할 이유도 없고, 견해를 달리하는 분들이 논쟁하는 건 좋은데 엉뚱한 비대위를 공격하는 건 솔직히 좀 서운하다"고 주장했습니다.
8월 28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제6대 대표로 공식 선출되면서 비대위원장직에서 공식적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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